거대 기업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그들의 성공이 단순히 거대한 규모나 압도적인 기술력만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쌓아 올린 철학과 진심, 바로 ‘심성(心性)’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본지 창간 14주년을 맞이해 기획한 ‘심성(心性) 브랜드 전략’ 시리즈는 기업의 뿌리인 ‘마음과 철학’의 가치를 조명한다. 이번 호에 소개하는 현대자동차는 국내 자동차 산업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며 한국 경제를 견인했다. 또 우수한 디자인과 기술력으로 내수·수출 시장을 동시에 장악하는 데 성공했으며 자동차 산업을 넘어 미래 산업을 선도하는 혁신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번 기사에서는 시(詩)를 통해 기업의 진심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시는 독자에게 기업의 스토리를 감성적으로 전달함으로 기업의 가치를 새로운 시각으로 발견하도록 하는 기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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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생활의 세 가지 요소로 의식주를 꼽는다. 하지만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해야 할 게 있다. 자동차다. 현대인의 삶에서 차는 가족 구성원에 맞먹는 지위가 있다. 자동차 없는 삶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현대자동차는 국내 자동차 산업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며 경제 성장을 견인해 왔다. 사실 이런 거창한 수식이 아니더라도 우리 삶에서 현대자동차라는 이름은 너무나 친밀하고 익숙하다.
포니, 전설의 시작
1967년 미국 포드자동차와 합작으로 설립된 현대자동차는 1975년 최초의 국산 모델인 ‘포니’를 생산하면서 한국 자동차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어젖혔다. 포니 덕에 한국은 일본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자체 자동차를 생산하는 국가가 됐다.
그리고 11년 만인 1986년 현대자동차는 전 차종 생산량 100만 대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고급 승용차의 대명사 ‘그랜저’가 출시된 것도 바로 이 해였다. 그랜저는 현대에서 다이너스티와 에쿠스가 나오기 전까지 국내 최상위급 자동차로 통했다.
특히 ‘각그랜저’로 불리던 1세대 그랜저의 당당한 위용은 가히 자동차의 제왕이라 할 만했다. 외제차가 흔하지 않던 시절 그랜저는 부의 상징으로 통했다. 때마침 86서울아시안게임, 88서울올림픽 같은 국제행사가 빈번했는데 국빈을 모시러 공항으로 달려 나가는 것도 그랜저였다. 현대자동차는 88올림픽 공식 자동차 공급업체이기도 했다.
엑셀, 수출 내수 모두 잡다
자동차 수출이 본격화된 것도 이즈음이다. 현대자동차는 2세대 소형승용차인 ‘엑셀’을 개발, 1986년부터 수출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현대자동차의 노력은 헛되지 않아 동년부터 1988년까지 엑셀은 미국 소형 수입차 3년 연속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엑셀은 미국에서만 잘 팔린 차가 아니었다. 한국의 경제성장기와 맞물리면서 국내 판매량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자동차는 사치품으로 인식돼 ‘부자들의 탈 것’이라는 관념이 있었다. 하지만 엑셀이 마이카시대를 불러오면서 자동차는 우리 삶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중형 세단 스텔라(후륜 구동)와 소나타(전륜 구동)의 약진도 눈부셨다. 스텔라(Stellar)는 라틴어 ‘별의’ ‘뛰어난’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14년이라는 긴 시간 생산되며 승용차·영업용 할 것 없이 많은 사랑을 받았다. 1997년 단종될 때까지 판매량만 48만7000대에 이른다. 스텔라는 쏘나타 신화의 초석으로 현대자동차를 중형차시장의 강자로 올려놓은 공이 크다.
1985년 출시된 쏘나타는 명실공히 현대를 대표하는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2025년에 이른 지금까지 40년째 생산되며 대한민국의 단일 승용차 최장수 브랜드라는 명예를 누리고 있다. 그만큼 판매량도 높아 2024년 8월 기준 누적 948만 대를 달성했다.
쏘나타의 장수 비결은 디자인 혁신에 있다. 1980년대 처음 출시될 때는 중후하고 무게감 있는 디자인이었지만 중형차 구매 연령층이 낮아지면서 YF쏘나타를 기점으로 파격적인 변신을 시도했다. 현재도 쏘나타는 패밀리세단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되 실험적인 디자인을 채택해 젊은 층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아반테 신화 초석 다진 엘란트라
1990년 출시된 엘란트라는 60년 국내 자동차 역사에서도 매우 특별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엘란트라는 소형차(1500cc미만) 세율에 중형차 버금가는 편안함을 제공하는 준중형세단으로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했다. 엑셀은 좀 작고 소나타는 부담스러웠던 X세대의 기호를 제대로 저격한 것이다.
그전까지 국내 자동차는 해외 유명 디자이너에 자동차 디자인을 위탁해 왔다. 하지만 엘란트라를 기점으로 현대자동차는 독자적인 디자인을 채택하기 시작했다. 엘란트라 고유의 유선형 외양에 자주색·군청색의 과감한 컬러는 무채색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또 엘란트라는 현대자동차의 상징이 된 타원 H 엠블럼을 최초로 사용한 차종이기도 하다.
엘란트라는 외양만 예쁜 차가 아니었다. 현대자동차 공식 최고속도 180km/h는 국산차의 품질이 얼마나 상향됐는지 제대로 보여 주었다. 1991년 TV 광고에서는 엘란트라가 아우토반을 배경으로 포르쉐 911을 따라잡는 가슴 벅찬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1992년 12월에는 엘란트라가 캐나다에서 ‘올해의 자동차’로 선정됐다.
대중을 위한 대중에 의한 대중의 차 엘란트라는 1995년 2세대 모델인 아반떼에 동일한 지위를 넘겨줄 때까지 경찰차·순찰차로도 광범위한 인기를 얻었다.
세계 5대 자동차회사로 우뚝
해를 거듭하면서 신차 개발에 박차를 가한 현대자동차는 1995년 엘란트라를 승계한 ‘아반떼’를 출시하게 된다. 아반떼는 대한민국 자동차 중 가장 많이 팔린 모델로 2014년10월 통산 판매량 1000만 대(엘란트라 포함)를 넘어섰다.
뭉쳐야 산다! 1998년 현대차는 외환위기를 맞아 경영난을 겪던 기아자동차를 인수해 현대자동차그룹의 주요 축을 형성하게 된다. 현대차는 이듬해인 1999년 ‘에쿠스’ ‘SUV 싼타페’를 선보이면서 국내 최초로 자동차용 연료전지를 개발했으며 글로벌경영에도 박차를 가해 2002년 중국에 베이징현대공장을, 2005년 미국에 앨라배마공장을 준공했다.
덩달아 현대차의 위상도 높아져 2005년에 ‘글로벌 100대 브랜드’에 진입했고 이듬해에는 자동차 총 생산량 부문 세계 6위에 올랐으며 매출 100조 원 시대를 열었다.
2009년 체코 공장, 2010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공장, 2012년 남미 브라질 공장을 준공하며 해외 설비를 확충했고 2013년에는 해외 누적 판매 5000만 대를 달성했다. 그 결과 현대자동차는 세계 판매량 순위 5대 자동차회사로 부상했다.
현재 현대자동차는 4차 산업혁명에 발맞춰 전기자동차와 수소자동차 생산부터 도심 항공 모빌리티(UAM), 로봇 개발까지 손을 대며 단순한 자동차 제조사를 넘어, 스마트 모빌리티 설루션 프로바이더로 발돋움하고 있다.
시작은 포니라는 작은 모델이었지만 현대자동차는 모든 사람에게 이동의 자유를 제공한다는 원대한 목표 아래 미래 산업을 선도하는 혁신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詩] 질주하라 현대차여저녁 해가 온 세상을 황금빛으로 물들일 때거친 숨 몰아쉬며 웅, 웅, 웅도로 위를 달리는 엔진소리하늘을 찌를 듯 우뚝 선 봉우리마다사나운 폭풍 하나씩 걸려 있고거대한 산맥은 더 큰 산맥으로 이어지네전설의 포니는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향하고그랜저는 영예로운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오네엑셀의 힘찬 엔진 소리가 미합중국 대륙을 흔드는 동안엘란트라의 유려한 자태는 국민의 마음을 흔들었지고출력의 쏘나타는 자동차의 진화를 이끌고스마트한 아반떼는 평범함의 기준을 바꾸었네아우토반을 달리고 북미 66번 국도를 달리고니스 해안도로를 달리고 잉크빛 지중해드넓은 태평양 모두 품어 안았네영웅이 지나는 길에는 찬란한 태양이미래를 향한 도약에는 혁신의 날개가현대차의 원대한 목표는 그 끝을 모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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