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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나갔다. 혹시나 하고 기다렸던 ‘한국인 노벨과학상 수상’은 올해도 비켜갔다. 작년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발표가 떠오르면서 ‘이젠 과학상!’이라고 기대했건만 아니었다. 왜일까. 결론적으로 노벨상이 나올 만한 기초과학 연구 생태계 부실이다.
평화상과 문학상을 받은 우리나라는 “생리의학‧물리‧화학 등 과학상과 경제학상은 언제쯤 받느냐”며 학수고대한다. 일본을 보자. 일본은 이화학연구소(RIKEN)를 1917년에 세웠다. 일본은 올해 사카구치 시몬(坂口志文) 오사카대 명예교수가 노벨 생리의학상, 기타가와 스스무(北川 進) 교토대 명예교수가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로써 일본의 노벨상 수상은 31번째를 맞았다. 문학상과 평화상(1번은 단체)을 각각 2번 받았기에 노벨과학상은 27명이 수상했다. 경제학상은 없다.
물론 우리는 구미 및 일본에 비해 여건이 달랐다. 한국은 선진국을 빨리 쫓아가야 할 패스트 팔로워(fast fallower)였다. 1966년 설립된 한국과학기술연구소(지금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초대 최형섭 소장의 “산업계에 도움이 될 연구를 해야 한다. 과학자들이 좋아하는 사치스러운 기초연구는 못 한다. 노벨상을 받고 싶은 사람은 여기 오지 마라”라고 한 일화가 시사하는 바 작지 않다.
60여 년 전부터 대한민국 정부는 산업기술에 투자를 집중했고 정부출연연구소는 자동차, 철강, 전자 등 기간산업의 연구개발(R&D)을 주도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선진국으로 빠르게 고도성장을 이뤘다.
우리에게는 ‘인류에게 혜택’을 주는 것보다는 국민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국가 발전’이 긴급했다. 대부분 연구자는 기존 지식을 응용‧가공하고 산업기술을 고도화하는 데 집중해 성공을 거두었지만, 세계 과학계에서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이 뚜렷한 지향점을 향한 정부의 과학기술 투자는 매우 유효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노벨상 수상 가능성은 낮아졌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변했다. 4차 산업혁명과 기술 패권 경쟁, 글로벌 공급사슬 붕괴가 맞물린 격동기에 국내외적으로 과학기술과 산업, 경제는 유례가 드문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현재의 위중한 경제 안보 상황에서 기존 방식과 시스템을 단기간에 전면 바꿀 순 없고, 그 강점을 폐기할 이유도 없다. 답은 간단하다. ‘투 트랙’ 전략이다. 기존 시스템을 고도화하면서, 선도형 R&D를 추동할 새로운 트랙을 설계하는 것이다. 그 트랙은 창의성·도전성·원초성·자율성·개방성 중심으로 시행착오나 실패가 학습 기회가 되는 생태계를 의미한다.
수십 년 현장 기초과학 연구자에게 재정적 지원에 못지않게 절실한 것은 연구평가 제도의 기준 합리화와 지원 절차 개선 등 연구 성과를 올릴 수 있는 자율적 관리가 요청된다. 대학교수들이 승진 요건을 채우기 위해 단기 실적 위주로 리스크가 적은 프로젝트에 매달리지 않도록 해야 노벨상 얘기가 공감을 얻을 수 있다. 극소수의 일탈을 문제 삼아 온갖 규정을 강화하고 추가 행정규제로 묶는 것은 R&D 성과를 낮추는 걸림돌일 수밖에 없다.
2013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랜디 셰크먼 UC 버클리 교수는 한국 언론과 인터뷰에서 “방향을 정하지 않는 전폭적 지원이 필요하다. 연구자를 자유롭게 놔두면 생산성이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인슈타인도 정부에서 원하는 주제를 연구했으면 혁명적 발견을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 게 뒷받침하고 있다.
노벨상이 나올 만한 기초과학 연구 생태계 혁신이 긴요함을 재인식해야겠다. 우리나라 과학자가 노벨상을 받기를 기대한다면 ‘인류에게 큰 혜택을 주는 발견’이 중요하다는 철학을 공유하고, 이러한 연구가 가능한 여건을 조성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암을 극복하는 면역 메커니즘을 규명한 공로로 201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혼조 다스쿠(本庶佑) 일본 교토대 특별교수는 기초과학 연구를 향한 신념을 역설하면서 뜻이 있으면 반드시 이룬다는 '후한서(後漢書)'의 ‘유지경성(有志竟成)’을 좌우명으로 소개했다. 그리고 이렇게 힘주어 말했다.
“실패는 당연하다. 주눅 들면 안 된다. 반드시 길이 있다.”
지금도 큰 울림을 주고 있는 경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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