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호의 오늘생각] 찰리 채플린의 ‘위대한 독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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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통해 시대의 고통 직시한 예술가
獨學과 독서로 철학 일군 광대의 지성
독재 맞선 희망의 연설, 지금 왜 그리운가

방민호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5-22 00:02:59

찰리 채플린(1889.4.16~1977.12.25)은 한국에 1920년 전후부터 이미 알려졌다. 소설가 김동인의 소설 ‘마음이 옅은 자여!(1920.2)’에 주인공이 채플린 영화를 보러 가는 대목이 나온다.

채플린은 영국 사람이지만 미국으로 건너가 영화산업에 진출, 전무후무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무궁무진한 창조력을 과시했다. 코미디 연기를 할 줄 아는 사람, 자기를 우스꽝스럽게 만들 줄 아는 사람은 훌륭하다. 그는 자신의 자존심을 희생시켜 사람들에게 웃음과 기쁨, 인간에 대한 성찰을 선물한다. 이 순간, 갑자기 일찍 세상 떠난 박지선 씨가 생각난다. 그의 연기가 참으로 그립다.

필자가 찰리 채플린을 사랑하는 까닭은 그가 천부적 재능을 발휘한 데 있지 않다.

하나, 채플린은 지독한 빈궁을 이기고 일어섰다. 가난한 극단 배우인 어머니, 일찍 세상 떠난 배우 아버지, 빈민구제 보호소 전전, 지방 극단 유랑 등…. 이 모든 어려움 속에서 채플린은 이복형 시드니와 함께 꿋꿋이 인생 승리를 향해 나아갔다.

또 하나, 채플린은 정식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한 상황을 지속적이고도 깊이 있는 독서로 이겨 냈다. 미국 서점에서 그가 아르투르 쇼펜하우어의 책을 구입하는 ‘나의 자서전(My Autobiography, 1964)’의 대목은 인상적이다. 그는 월트 휘트먼의 시집 ‘풀잎(Leaves and Grass, 1855)’을 조바심을 치며 읽고, 마크 트웨인·너대니얼 호손·에드거 앨런 포·위싱턴 어빙·윌리엄 해즐릿 등의 작품을 짬을 내서 읽었다. 이런 방식으로 스스로의 사상을 구축했다.

마지막 하나, 채플린은 창조와 가난한 이들과 자유를 위한 삶을 사랑했다. 무엇보다 전체주의 폭력을 규탄할 수 있었다. 그의 유성영화 ‘위대한 독재자’는 신랄하다. 가상의 나라 ‘토메니아’의 게토(Getto)에서 살아가는 유대인 이발사는 이 나라의 독재자 힌켈과 외모가 판에 박은 듯하다.

작중의 힌켈은 과대망상증에 걸려 있다. 늠름함을 흉내 내는 복장과 세 치 혀의 능변으로 대중을 현혹한다. 어린애를 끌어안고 선전용 사진을 찍고, 언제나 들리는 곳곳의 확성기로 매일같이 라디오 선전을 실어 나른다. 시민들, 특히 그가 ‘비시민’으로 낙인찍은 유대인들은 상시적 모욕과 구타, 연행에 시달린다. 비정상이 정상이 된 나라, 견딜 수 없게 된 이들은 이상 속의 낙토 ‘오스트리히’를 그리워한다.

이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이발사는 독재자로 오인되어 연설대에 서게 된다. 이 장면의 대사는 명문 중에서도 명문이다.

독재자로 분(扮)한 이발사의 명연설이 그리워지는 나날이다. ‘독재’는 단 6개월도 끔찍하다. 길다. 견디기 힘들다.

본 것을 못 본 척하고 말하고 쓰고 싶어도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알 수 없는 공포가 스멀스멀 공중파 뉴스들을 타고 여기저기 흩뿌려진다. 낙인 찍히지 말아야 한다. 살려면 알아서 조심해야 한다. 영화 속 배우가 판사가 된다. 말을 사슴이라고 하면 믿어야 한다.

우리의 마지막 희망, 유대인 이발사가 희망을 찾아 토메니아를 떠난 한나와 ‘우리들’에게 말한다.

“여러분에게는 삶을 자유롭고 아름다우며 멋진 모험으로 만들 힘이 있습니다. (…) 독재자들 스스로는 자유를 누리면서 사람들은 노예로 전락시켰습니다. (…) 이런 비정상적인 자들에게 굴복하지 마십시오. (…) 우리 모두 이상이 살아 있는 세상을 위해 싸웁시다.”

대통령이 의회에서 한 번에 탄핵되지 않자 변칙적으로 또 한 번 상정해서 탄핵한다. 불법의 불법의 불법이 자행되고, 무효인 영장 청구에 의해 강압적으로 이루어진 체포영장으로 대통령을 끌어간다. ‘헌법재판소’가 8대0이라는 전체주의적 100퍼센트 숫자로 대통령을 끌어내린다. 대통령을 탄핵하고 대통령의 대행을 탄핵하고, 대통령의 대행의 대행을 탄핵하고, 대통령의 대행의 대행의 대행이 언제 탄핵될 지 알 수 없다. 대법원장이 언제 탄핵될지 알 수 없고 고등법원 판사쯤이야 당장이라도 탄핵될 수 있다. 대통령이 되면 있던 것도 없던 것이 될 수 있는 법이 만들어진다. 한 사람이 입법에 행정에 사법을 관할한다. 아, 그러나 독재가 아니란다.

이토록 ‘정상적인’ 나라에서 너무나 ‘정상적인’ 선거관리위원회가, 투표지 관리관 도장을 사전 인쇄해 놓고, 국제선거감시단의 참관을 불허해도 ‘정상적인’ 선거를 치러 낼 수 있다. 허튼 말을 하면 아무라도 누구라도 ‘파출소’에 고발될 수 있다. ‘파출소’가 아니라도 ‘페이스북’이 ‘X.com’이 누구라도 ‘재판’에 회부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나라에서 토메니아의 힌켈의 라디오 스피커는 ‘하나도 구부러져 있지 않다!’.

‘하느님의 나라’는 사람들 속에 있다. 연설 중에서 힌켈이 말한다. ‘누가복음’ 중에 그런 문장이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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