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의 만사만감(萬事萬感)] 진화하는 가족과 세대 전쟁 속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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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5-10 06:30:50

대학 신입생들의 수업 시간, 슬쩍 여론조사를 해 본다. “여러분, 지금 집을 떠나 부모님과 따로 사는 사람 손 들어 봐요.” 두세 명이 손을 든다. 서울 아닌 다른 지역 학생들이다. “언제쯤 부모님에게서 독립하는 게 적당하다고 생각해요?” 놀랍게도 이 질문에 학생들이 한목소리로 답했다. “서른 살이요!” “왜 그렇게 생각해요? 독립이 늦을 수도 있잖아요. 사람마다 다른데.” “교수님, 그건 아닙니다. 서른이 넘어서도 부모님과 산다는 건 평생 같이 살겠다는 거지요.” 스무 명이 좀 넘는 학생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표정까지 통일됐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이다.

대학을 졸업한 지 한참 된 아들에게 이 말을 했다. “엄마, 그때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 세상살이가 얼마나 힘든지 모를 때잖아.” 바깥일에 바쁜 나는 어릴 때 아이들을 방목했다. 말이 좋아 방목이지 알아서 크라고 한 것이다. 학교에 결석 안 하고 큰 병 없으면 되었다 생각하고 키웠다. 사춘기를 지나 의사표현을 좀 하게 되자 무관심하고 무심한 엄마라고 섭섭해 했다. 집에서도 엄마의 앞통수는 보지 못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뒤통수만 봤다는 것이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 보상하기로 했다. 각자 자신의 꿈을 이룰 때까지 뒷바라지를 해 주겠다고 했다. 다른 형태의 방목이 계속되었다. 급할 것이 없으니 아이들의 인생 시계는 느려졌다. 이제라도 좋은 엄마가 되어 보겠다는 마음이 또 다른 문제를 만들고 있었다.

건강에 자신만만했던 내게 3년 연속 큰 수술이 이어졌다. 그러고 나니 자신감이 탈탈 털렸다. 건강이 좋았던 게 아니고 몸을 눌러 쥐어짜며 살았음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을 무한정 돌볼 수 없다는 걸 깨달았고, 최대한 빨리 독립시켜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20대부터 ‘홀로서기’의 다짐이 있어야 했는데 내 탓으로 그 시점부터 ‘의지하기’를 다지고 있던 아이들에게 이 노릇을 어쩌랴.

하지만 조금씩이라도 서로 간의 연결고리를 풀어야 했다. 몸이 약해지니 마음도 약해지는 총체적 난국을 맞아 선배들을 찾아다니며 조언을 구했다. 다행히도 나는 베이비붐 세대의 끝자락에 있었고 비슷한 고민을 하는 같은 세대의 지혜로운 언니·오빠들이 있었다. 그분들은 나보다 일찍 같은 고민을 했고 나름의 해결책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정도 조언을 듣고 돌아와 유튜브를 보았다. 성인이 된 자녀 독립시키기·노년에 하지 말아야 할 세 가지·이렇게 하면 노년에 폭싹 망합니다 등의 영상이었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몽땅 뒤지고 다닌 것이다. 그러다가 자녀 입장에서 부모를 보는 영상도 보게 되었다. 나르시시스트 부모에게서 살아남기·이기적 부모에게 당하지 않는 비법·호구 딸에서 벗어나라 등 젊은이들이 부모에게서 독립(?)하기 위한 영상도 많았다.

세대 전쟁이다. 친구 중 하나는 이런 말도 했다. 성인이 된 딸과의 사이에서 언짢은 대화가 오갔는데, 딸의 요지는 “부모는 자식을 낳았으니 키우고 돌보는 의무를 다해야 함이 마땅하지만 자녀의 경우는 다르다. 부모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었다.

우리 세대는 개발도상국 사람들이고 자녀 세대는 선진국 사람들이다. 또 우리 부모님 세대는 일제 식민지 사람들이다. 격동기를 지낸 대한민국이라서 3세대가 만나면 용어조차 알아듣기 힘들다. 가치관과 사고방식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래도 한국인의 끈끈한 자식 사랑은 유별나지 않은가!

한국에서 부모가 자녀 한 명을 키우는 데 드는 비용이 3억8198만 원이라고 한다. 평균 비용이 이러니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집안에서는 훨씬 더 많은 돈을 들일 것이다. 자녀가 둘이라면 7억6396만원이 들 것이고 그 정도 비용이면 100세 시대 노부부의 생계자금으로 적당할 터이다.

답답한 부모를 바라보던 자녀 세대는 살 궁리를 했다. 그 방도는 간단히 말하면, 부모처럼 살지 않는 것이다. 자식에게 희생하며 살지 않기·부모 봉양하느라 힘 빼지 않기·세상 못 믿을 게 남자고 여자이니 결혼 같은 거 하지 않기·자식이라는 게 별 소용도 없으니 아예 만들지 않기 등이다.

선진국 사람들의 지혜로운 선택을 누가 반박할 수 있을까? 정보화시대 1인 가족이 늘어나는 데 효도와 우애를 논하면 시대착오적 발상이 된다. 성인이 된 후 부모자식은 어느 정도의 거리와 간격을 두고 지내는 게 옳지 않을까 하는 것도 고민할 일이다.

궁금해서 자연을 돌아보았다. 식물은 전략적으로 후손을 먼 곳으로 내보낸다. 육식동물은 다 자란 자식을 어떻게든 떼어 놓는다. 사자도 수컷 성체는 서둘러 무리를 떠난다. 초식동물은 좀 다르다. 그들은 웬만하면 뭉쳐 산다. 무리가 크면 클수록 생존에 유리하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식물처럼 살고 있나, 동물처럼 살고 있나. 동물이라면 초식동물처럼 아니면 육식동물처럼 살고 있을까. 진화하는 사회 속에서 일어나는 치열한 세대 전쟁에 어떤 해법이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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