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의 만사만감(萬事萬感)] 3·1운동 도화선 된 종교인들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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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3-04 06:31:00

서울 종로구 수운회관 정문 우측에는 ‘독립선언문 배부 터’ 기념비가 있다. 천도교와 기독교 지도자들이 천도교 중앙총부에 모여서 독립선언문을 배부한 것을 기념하는 비다. 3·1독립선언문에는 천도교 대표 15인·기독교 대표 16인·불교 대표 2인 등 총 33인이 민족 대표로 서명했다. 종교인이 주축이 된 것이다.

3·1운동을 주도적으로 준비한 종교는 천도교다. 천도교 3대 교주인 손병희는 우이동에 봉황각을 짓고 교단의 지도자들을 키워 냈다. 봉황각에서 483명의 지도자가 배출되었고, 이 중 15명이 민족대표 15명에 들어왔다. 독립만세운동을 기획했던 천도교 사람들은 당시 유명한 정치·사회계 인사들과 손잡고 일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대다수의 인사가 난색을 표명하면서 결국에는 종교 지도자들끼리 힘을 합치게 되었다. 기독교가 최초로 합류했다. 이승훈이 천도교와 합력해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불교에서는 한용운이 승낙했다.

독립선언서의 작성과 서명 또한 난항을 겪었다. 박영효·김윤식 등 저명인사들이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기를 거부하면서 계획이 좌초될 뻔했다. 최린이 최남선을 독립선언서 작성자로 추천했고 최남선이 이를 수락해 초안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최남선 또한 서명은 고사했기 때문에 한용운의 반대에 부딪혔다. 한용운은 자신이 선언서를 쓰겠다고 했는데 이미 초고가 만들어진 때여서 어쩔 수 없었다.

독립선언서 원고는 오세창을 통해 천도교에서 경영하는 보성사 인쇄소 사장 이종일에게 전달되었다. 이종일은 공장 감독 김홍규와 함께 2만1000매를 인쇄해 경운동 자기 집에 가져다 두었고, 28일부터 감시의 눈을 피해 전국 각지에 전달했다.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인쇄한 보성사는 6월28일 밤 일제가 불을 질러 몽땅 태워 버렸다.

광무 황제의 인산일을 기하여 전국적으로 일어난 비폭력·무저항 운동인 3·1운동이 종교계가 중심이었던 것은 왜일까? 이 거대한 만세 운동의 준비 과정에는 조직의 힘이 필수적이었다. 당시 애국계몽단체들이 있기는 했지만 전국적인 조직을 갖지는 못했다. 가장 교세가 강한 종교는 천도교였다. 따라서 천도교가 주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천도교는 1894년 동학혁명 시기에 일제에게 20만 명의 신도가 참혹하게 학살되었다. 하지만 3·1운동 당시 교인은 300만 명으로 늘어나 어떤 교단보다도 큰 교세를 자랑했다. 그들은 불교·기독교와 손을 잡고 전국에서 3·1운동을 이끌었다. 이처럼 종교적 신앙과 조직력이 독립만세운동의 기폭제가 된 것이 분명하다.

3·1독립운동에는 인종을 뛰어넘어 푸른 눈의 서양 선교사도 동참했다. 부산진일신여학교(일신여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교사들이다. 일신여학교는 고종 32년(1895년) 10월15일 호주 장로교선교회 여자전도부가 설립한 부산 최초의 근대 여성 교육기관이다. 학교 이름인 ‘일신(日新)’은 ‘날마다 새롭게’라는 뜻이다.

1891년에 부산에 파견되어 경남 지역 최초의 근대 여성 교육기관인 일신여학교를 설립하여 초대 교장이 된 이사벨라 멘지스 선교사는 1919년 3월10일 일신여학교 학생들이 태극기를 제작할 당시 기숙사 사감을 맡고 있었다. 이사벨라 멘지스는 태극기 제작에 필요한 깃대를 제공했으며 증거 인멸을 위해 태극기를 소각한 일로 일제에 체포되어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마가렛 샌더먼 데이비스 선교사는 1910년에 파견되어 일신여학교 교무주임을 지내다 1914년부터 교장을 맡았다. 1919년 3월11일 학생들을 이끌고 만세 시위에 참여했다가 체포된 후 불기소처분을 받았다. 역시 호주 출신인 데이지 호킹 선교사 또한 1916년부터 부산에서 어린이를 위한 성경학교와 주일학교를 운영하다 1918년부터 일신여학교에서 근무했다. 1919년 3월11일 학생들에게 만세 시위를 권유하면서 함께 행진하여 일제에 체포돼 불기소처분을 받았다.

일신여학교의 교사와 학생들이 주도한 만세 시위는 독립운동이 부산･경남 지역으로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고, 시위의 계획과 지휘를 여교사와 여학생들이 주도했다는 점에서 여성 독립운동 분야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그 중심에는 기독교 선교사들의 신앙과 헌신이 있었다.

일제가 1940년대에 기독교 학교에도 신사참배를 강요하자 ‘신사참배 거부’라는 호주장로회의 방침에 따라 일신여학교는 폐교되고 선교사들은 모두 호주로 돌아갔다. 한국의 독립운동을 도운 일신여학교의 세 선교사에게는 2022년에 각각 건국훈장 애족장과 건국포장 등이 수여되었다.

국가보훈부는 3·1운동을 도운 호주 선교사 3명을 2024년 3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땅의 것이 아닌 하늘의 뜻을 좇은 대한독립의 마음은 피부색과 민족을 뛰어넘어 많은 이들의 뜨거운 마음을 하나로 엮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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