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의 만사만감(萬事萬感)] 하늘이 발행하는 계산서 ‘천토’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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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2-06 06:30:50

유튜브 알고리즘을 따라가다가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사건을 다루는 채널로 들어가게 되었다. 오랫동안 현장에서 많은 강력범죄를 다루다가 지금은 제자를 가르치는 교수가 만든 채널이다. 혼자서 진행하진 않고 몇 사람의 후배가 돌아가면서 출연하여 이 교수와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눈다. 처음에는 호기심에 보기 시작했는데 보다 보니 놀라운 사실을 몇 가지 알게 되었다.

약자가 피해자이다 보니 가슴 아프게도 대부분 ‘여성’이 살해당한다는 사실, 범행 동기는 몇 가지로 나누어지지만 대다수 금전을 노린 것인 점, (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사람을 몇을 죽여도 사형선고를 받는 일은 매우 드물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선량하지만 인구의 몇 퍼센트에 지나지 않는 범죄자의 심성이 사건을 일으킨다. 그래서 경찰과 검찰은 이들 소수 때문에 오늘도 밤을 새우며 격무에 시달린다.

채널의 콘텐츠는 경찰 출신 교수가 평생 기록한 수사일지다. 교수의 꼼꼼한 수사일지를 토대로 사건이 재구성되어 소개된다. 오래전 TV에서 장수 프로그램으로 각광을 받던 ‘수사반장’이 생각난다. 비슷한 유튜브 채널이 여럿 있지만 내가 이 프로그램에 채널을 고정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건 바로 교수가 묵직하고 힘있게 툭 내던지는 한마디다. “하늘이 있어요!” 하늘이 보고 있다는 뜻이고 하늘이 기억한다는 말이다.

범죄의 실마리를 찾아 들어가도 도통 보이지 않아 낙담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증거가 갑자기 발견된다. 하늘이 알려준 것이다. 초동수사를 비롯하여 끈질기고 정성스럽게 수사를 진행하다 보면 아주 엉뚱한 곳에서 예상치 못한 순간에 단서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교수의 신앙적 고백인가 생각한 적도 있고, 이번 사건만 특수했겠지 짐작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범죄와 경찰의 일에 문외한인 내가 보아도 미제 사건이 될 일들이 술술 풀려나가는 데는 하늘의 ‘개입’이 있다. 하늘이 피해자의 ‘한(恨)’을 우리에게 중개해 주는 걸까?

아주 오래전부터 동양인의 하늘은 다양하고 복합적이었다. 사계절이 순환하기에 하늘의 역할이 더욱 중요했을 수 있다. 땅 위의 만물을 키우고 죽이는 하늘을 동양인은 두려워하여 섬겼다. 하늘은 계절에 따라 다른 모습을 하고 하는 일도 다르다. 인간도 생명을 지닌 만물 중 하나이므로 자신 또한 하늘의 자식이라고 생각했다. 서양의 인격신과 인간의 관계와는 다른 모습이다.

동양의 성인 공자는 자신이 하늘의 명령을 받고 땅에 왔다고 믿었다. 그것이 천명(天命)이다. 일생의 힘든 고비마다 그는 천명을 방패삼아 살았다. 천명은 공자의 삶의 의미이고 목적이고 방식이었다. 공자는 늘 하늘과 가까웠고 많은 이야기를 하늘과 나누었다. 제자에게도 하늘의 뜻을 알고 실천하도록 가르쳤다.

공자보다 조금 선배였다고 기록되는 노자는 하늘을 전혀 친밀하게 보지 않았다. 노자가 본 하늘은 범접하기 어려운 존재이고 무정한 대상이었다. 세상 만물을 살리기도 거두기도 하는 하늘은 누구의 편도 되지 않고 누구를 편애하지도 않는다. 고대사회로부터 그렇게 하늘은 요물단지였다. 가깝거나, 멀거나, 사명을 주거나, 방관하거나, 살리거나, 죽이거나, 상 주거나, 벌주거나.

같은 문화권이지만 한국은 좀 다르다. 하늘은 성큼 우리 가문에, 내 마음에 들어와 있다. 까마득한 옛날에 조선을 세운 분이 하늘의 손자(단군)이니 우리 조상인 하늘은 가문에 계신 것이고, 근대의 문턱에서 많은 한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동학의 하늘은 아예 내 마음 안에 짱박혀 있다. 하늘이 인간이고 인간이 하늘(人乃天)이다. 그러니 사람 섬기기가 하늘 섬기기이고, 하늘 섬기기가 사람 섬기기(事人如天)다. 한국인은 그렇게나 하늘을 가깝게 여기며 살았다. 그래서 사건을 다루는 채널의 교수는 아주 편안하게 ‘정말 하늘이 있다니까요!’라고 자신감 넘치는 발언을 하고 나는 신나서 고개를 주억거린다.

공자의 제자 맹자는 공자보다 한 술 더 떠 하늘이 인간의 삶에 강력하게 개입한다고 했다. 무언가 잘못 돌아갈 때 특히 임금이 ‘하늘의 자식인 백성’을 괴롭히거나 잘 돌보지 않을 때 하늘은 그 임금을 내치고 자격 있는 임금을 세운다고 했다. 맹자는 전국시대 왕들에게 두 눈 똑바로 뜨고 이렇게 ‘혁명’을 말했고 그 혁명을 하늘의 토벌, 즉 ‘천토(天討)’라고 했다. ‘하늘의 존재’를 역설하는 교수의 선량하지만 확신에 찬 음성은 동양의 뿌리 깊은 전통에 기인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억울하게 만들면 하늘은 계산서를 발행한다. 수취인은 범죄자일 수도 임금일 수도 국회의원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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